초등학교 동창이며 이웃인
미숙이는 곶감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려고 애쓴 게 아닐까 싶다.
그 작고 말라붙은 단맛 하나가
세상에서 자기를 위하는 유일한 조각 같아서.
사탕이 생기면 미숙이는 곧장 먹지 않았다.
과자가 생겨도 뜯지 않았다.
책장 뒤, 장롱 안,
한겨울 외투 주머니 속 깊은 곳에
조용히 숨겨두었다.
"왜 안 먹어?"
내가 물었을 때,
미숙이는 그냥 웃었다.
“그냥… 나중에.”
그 말 한마디.
그 안엔
기다림, 설움, 그리고…
아무도 몰랐던 외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단맛은
거의 항상 사라졌다.
그녀의 삼촌, 오빠.
집안 형제들이
그걸 기어코 찾아내
말도 없이 다 먹어버렸다.
미숙이는
한마디도 못 하고
빈 포장지만 손에 쥐고 서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묵묵히,
자기 몫이 사라지는 걸
그 애는 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때 알았어.”
미숙이가 말했다.
“세상엔 내 거라는 게 없다는 걸.”
어릴 적부터
손해 보는 법을 배워야 했던 아이.
좋은 건 남이 먼저 먹고,
자기한테 남는 건
식은 밥,
눅눅한 과자,
다 빠진 국물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성인이 된 미숙이.
짬뽕을 함께 먹으면
새우부터 건져낸다.
오징어살, 홍합…
하나하나 골라내
작은 접시에 담아
우리 앞에 살짝 밀어놓는다.
자기 접시는
언제나 맨 마지막.
국물뿐이다.
그마저도
“나는 원래 국물이 좋아.”
하고 웃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웃음은
‘괜찮은 척’하는 표정이라는 걸.
어느 날,
우리가 그 접시에 담긴 새우를
말도 없이 다 먹어버렸을 때,
미숙이는 자리로 돌아와
텅 빈 접시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맛있었지? 잘됐네.”
그 순간,
나는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쏟아지려 해서.
미숙이는 지금도
동생들 부탁에 지갑을 열고,
되돌려받지 못한 돈에 대해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가 먼저 먹기를 기다린다.
항상 뒤로 물러서며,
자기는 괜찮다며 웃는다.
미숙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걸 내어주고,
끝내 아무것도 받지 못하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세상 누구보다
많이 뺏기고,
많이 참았던 사람.
그런데도,
"나는 그 정도면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나는 이제서야 안다.
그 곶감 하나에,
그 짬뽕의 새우 한 마리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얼마나 깊은 외로움이
숨겨져 있었는지를.
이제는,
내가 가장 먼저
미숙이의 그릇에
따뜻한 국물을,
가장 좋은 걸
가득 담아주고 싶다.
그리고,
그 말—
제발 다시는 미숙이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해주고 싶다.
“난 괜찮아.”
“나는 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해.”
이제는
미숙이가 먼저 먹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처음부터,
그럴 자격이 있었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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