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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 학교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꽃사미 2026. 1. 2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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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늘 같은 길에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로 향하던 신작로, 밤새 가라앉은 먼지 위로 햇살이 얹히면 길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부드러운 색을 띠었다. 그날도 대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가 키우던 강아지 두마리가 자연스레 뒤를 따랐다. 문턱을 넘는 발소리에 반응하듯, 작은 발이 바쁘게 따라붙고 꼬리는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말 한마디 없어도, 그 흔들림 하나로 아침은 충분히 환해졌다. 

강아지들은  늘 나보다 한 걸음 뒤에서, 때로는 옆에서, 가끔은 앞서서 걸었다. 신작로의 자갈 위를 밟을 때마다 조심스럽게 발을 고르던 모습, 풀냄새가 나면 잠시 멈춰 코를 들이대던 습관, 그리고 다시 나를 확인하듯 뒤돌아보던 짧은 눈빛. 그 모든 것이 평범해서, 그래서 더 소중했던 풍경이었다. 그 아침 역시, 그런 평범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때  등교하는 한 친구가 나타났다.
등교길의 친구는 늘 활달했고, 휘파람은 그의 인사 같은 것이었다. 공기를 가르며 울리는 가벼운 소리. 장난기와 호기심이 섞인 그 휘파람은, 강아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신호였을 것이다. 강아지는 순간 고개를 들었고, 꼬리는 더 크게 흔들렸다. 작은 몸이 소리를 향해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그 짧은 선택이, 그렇게 큰 시간을 가를 줄은 아무도 몰랐다.


갑자스레 나타난 자동차 엔진의  공기를 밀어내는 낮고 둔한 굉음, 그리고 짧고 단호한 충돌. 신작로 위에서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아침의 밝음은 순식간에 낯선 색을 입었고, 꼬리를 흔들던 리듬은 끊겼다. 아이들의 발걸음도, 웃음도, 말도 멈췄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것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아이들은 너무 이르게 어른의 언어를 배웠다—“사고”라는 단어를.

어른들은 사고라 불렀고, 나는 순간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사고는 설명이 되지만, 이름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름에는 온기가 있고, 기억이 있고,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이 함께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조용히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은 다음 날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작되는 하루가, 얼마나 쉽게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외로워진 강아지 한마리만 나를 배웅할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짧았지만, 그날은 유난히 길었다.
대문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작은 그림자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그 익숙한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당은 그대로였고, 하늘도 그대로였는데,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다. 그 빠진 자리만큼 공기가 비어 보였고, 그 비어 있음이 어린 마음에는 너무 컸다.

며칠 뒤, 학교 음악시간에 나란히 앉았다. 피아노 앞에서 선생님의 손이 건반 위를 천천히 누르자, 교실은 익숙한 멜로디로 채워졌다.
“우리 집 강아지는 복슬 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

그 순간, 노래는 노래가 아니었다.
가사는 교실에 울렸지만, 내 안에서는 마당이 열리고, 신작로가 펼쳐지고, 꼬리를 흔들던 작은 몸이 다시 나타났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가장 먼저 달려오던 그 모습, 신발끈을 묶기도 전에 발치에 와서 빙글빙글 돌던 그 습관이, 음표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맑았지만, 내 목은 자꾸 잠겼다. 따라 부르려 할수록 숨은 얕아졌고, 음은 자꾸 어긋났다.

눈물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칠판 위의 오선지처럼 조용히, 눈가에 고였다. 고개를 숙이면 떨어질 것 같아, 나는 악보를 더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나 글자들은 흔들렸고, 멜로디는 선명할수록 더 아팠다. 교실의 밝음은 이상하리만큼 환해서, 그 밝음이 오히려 슬픔을 더 또렷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가 규칙적으로 울렸지만, 내 마음의 박자는 그날 이후 조금 늦어졌다.

그때 알았다.
기억은 때로 노래의 얼굴로 찾아온다는 것을. 가장 순한 동요가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슬픔은 꼭 울음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멜로디로, 가사로, 아무렇지 않은 교실의 공기로도 스며든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작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바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불었다. 길은 기억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알았다. 그 길 위에는 이미 하나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내 발걸음이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작은 발걸음이 함께 겹쳐진다는 것을.

세월이 흘러도 그 아침은 희미해지지 않는다.


등교길의 햇살, 꼬리의 리듬, 휘파람의 순간, 그리고 음악시간의 동요. 우리는 그 기억을 가슴에 접어 넣고 살아간다. 그 접힌 자리에서 배운 것은 단순하지만 깊다. 사랑은 따라오고, 호기심은 뛰어나가며, 삶은 언제나 조심을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상실은 크게 울지 않아도, 침묵 속에서 오래도록 숨을 쉰다는 것.

아마도 그 강아지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아침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신작로 위가 아니라, 기억의 들판에서.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나를 기다리며. 그리고 나는, 그 아침을 마음속에 데리고 살아간다. 끝난 길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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